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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쿠아카] 작별 인사연성/단편 2020. 7. 13. 16:04
-사망 소재 있음.
-올린 브금 꼭 같이 들으면서 읽어주세요. 본 소설은 해당 노래와 인용된 소설의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밝힙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CRnuJWt0Pw
보쿠토 코타로가 죽었다.
갑작스러운 사고가 생긴 것도, 어떤 사건에 휘말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토록 튼튼했던 그도 선수 생활을 끝마치고 나서야 찾아온 병마에는 뚜렷한 대응을 할 수 없었을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연의 섭리가 그러했고, 보쿠토 코타로는 그저 인간이었으니. 병마는 한때 경기장의 넓은 코트에서 경기의 모든 관객을 제 편으로 끌어오던 선수의 삶의 불씨를 천천히 꺼트렸다. 보쿠토는 그 일을 천천히, 그리고 덤덤히 받아들였다. 코트에서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던 보쿠토 코타로는 제 죽음의 앞에서도 찬란히 웃어 보였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듯이.
그리고 그 옆에 늘 아카아시 케이지가 있었다.
아카아시 케이지 역시 보쿠토 코타로의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지필 수 있지는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아카아시는 평범한 인간이었고, 의사조차 아니었으니. 아카아시 케이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날이 갈수록 제게서 한발짝 멀어지는 제 연인의 곁을 지키는 일 밖에 없었다. 보쿠토 코타로는 아카아시 케이지의 옆에서 늘 웃었고, 천천히 생을 정리했고, 주변 인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아카아시는 그 옆에서 아무런 대거리 없이 보쿠토 코타로를 도와주었고, 그건 그저 그들이 꼭 후쿠로다니 학원의 배구부의 주장과 부주장이던 그 시절만 같았다. 너희는 어째 변한 게 하나도 없냐. 그런 말에 아카아시는 몰려오는 무력감을 꾹꾹 삼킨 채 그저 웃었다. 그러게요. 보쿠토도 울지 않는데 제가 울 수는 없었으니.
*
보쿠토 코타로는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그가 늘 자리했던, 아카아시 케이지의 옆에서.
보쿠토 코타로의 장례식은 고인의 뜻에 따라 조촐하게 치뤄 졌다. 인사하고 싶은 이들은 생전에 모두 찾아갔으니 그 이후에도 슬퍼 하지는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모두 그가 그런 뜻을 가졌음을 알았지만, 장례식은 지인들과 팬들의 조문으로 붐볐다. 아카아시 케이지는 법적으로 그의 가족이 아니었기에 원칙적으로는 상주로써 참여할 수 없으나, 보쿠토의 가족들이 모두 그가 있어도 괜찮다고 말했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었다. 보쿠토와 아카아시 모두의 지인들은 모두 아카아시의 앞에서 한참을 머물다 돌아가고는 했다. 말이 많이 오갈 때도 있었고, 말이 한 마디도 오가지도 않을 때도 있었으나 모두가 한 마음으로 아카아시를 위로했다. 아카아시 케이지는 주변인들의 그런 위로가 기껍다가도, 주체할 수 없이 슬퍼지기도 했다. 주체 되지 않는 감정이 낯선 아카아시가 몸을 일으켰다. 아무래도 바깥 바람이 조금 필요한 것 같았다.
건물의 바깥, 벤치에 앉아 생기 없는 눈으로 풍경만을 관찰하던 아카아시에게 다가온 것은 쿠로오였다. 그는 멍하니 앉은 아카아시의 손에 들고 온 음료수를 쥐어 주며 입을 열었다. 평소와는 다른, 다소 가라앉았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아카아시, 괜찮아?”
그 말에 고개를 든 아카아시가 한참동안 손에 쥐어 진 음료 캔만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요.”
그 솔직한 말에, 쿠로오는 아카아시의 옆에 털썩 소리가 나게끔 주저 앉았다. 그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작별 인사는 받았어? 그 녀석, 엉청 인사하고 다녔잖아.”
아카아시가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당신은 왜 내게 인사도 없이 떠났는가. 그렇게 다시 울컥 올라오려는 감정을 삼켜 내기 위해 호흡을 골랐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쿠로오가 아카아시에게 상자를 하나 건넸다. 이게 뭐냐는 눈의 아카아시에게 쿠로오는 가만히 말했다.
“작별인사. 나한테 전해 달라더라. 그 녀석도… 겁이 났었나 보지. 너한테 직접하기엔.”
그 말에 아카아시는 손에 들린 상자를 눈에 담았다. 검은색의 상자에, 노란색으로 리본이 묶인 상자는 꼭 망자가 작별인사로 남긴 것 같지는 않은 모양새였다. 그 와중에 상자의 노란 리본이 보쿠토의 눈 색깔을 닮아서, 아카아시는 다시 한번 울음을 참아야만 했다. 그런 아카아시를 위로하듯, 쿠로오의 손이 아카아시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려주었다.
*
아카아시가 그 상자를 열어 본 것은 장례식을 모두 마친 후였다. 본래 둘이서 살던 집으로 혼자 돌아온 아카아시는, 한참 동안을 소파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치 같이 살던, 누군가를 기다리던 때처럼. 허나 그 누군가는 다시 돌아올 수 없기에, 아카아시는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몇일 사이 조금은 앙상해진 아카아시의 손이 상자를 조심히 집어 제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조심히 그의 눈 색을 닮은 리본을 풀어내고, 검은 상자의 뚜껑을 열면, 거기에는 책 한 권에 편지 한 통이 끼워진 채 자리하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조심히 책을 펼쳐 옆에 놓고, 편지를 펼쳤다. 귀퉁이에 부엉이와 올빼미가 그려진 회색의 편지지 위에, 그를 닮은 서체로 쓰인 편지였다.
[아카아시 케이지에게.
안녕, 아카아시. 아카아시가 이 편지를 펴보았다는 이야기는… 내가 더 이상 너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겠구나. 그래. 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기어코 그 날이 와 버린 거겠지? 있지, 아카아시. 하나만 먼저 물어봐도 돼?
혹시 지금 울고 있어?]
아니요, 보쿠토상. 저 울고 있지 않아요. 듣는 이가 없는 대답을 하는 아카아시가 애써 다음 줄로 눈을 옮겼다.
[역시 아카아시는 울고 있지는 않으려나? 하지만 걱정 된단 말이야. 그것도 그럴게, 이별하는 건 처음이니까… 아카아시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상상이 잘 안가서. 그래도 아카아시, 먼저 가는 주제에 감히 부탁 하나만 할게.
행복해야 해. 아카아시. 울지 마.]
저 안운다니까요. 진짜에요… 낮게 읊조리는 아카아시의 목소리는 울음에 잠겨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아카아시는 울고 있지는 않았으니.
[아카아시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침착하고, 차분한 사람이니까 분명 내가 없어도 알아서 잘해내겠지만 말이야. 나한테 아카아시는 늘 걱정스러운 걸. 아카아시는 늘 고민이 많으니까 말이야. 혹시라도 안 좋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서 말이야. 물론 괜한 걱정이겠지만!]
저 그런 생각 안해요. 누가 누굴 걱정한 거에요. 바보 같이… 아카아시는 울지 않았다.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입술을 한 번 강하게 물었다.
[있지, 아카아시. 나는 먼저 가지만, 아카아시는 오래오래 살아줘야 해. 꼭이야. 내가 계속 지켜보면서 감시할거야. 아카아시 언제 오는지. 일찍 오면 왜 이리 일찍 왔냐고 혼내줄거야. 진심이야! 내가 아카아시한테 화 못 낼 것 같지? 두고 봐. 앗, 그렇다고 확인하러 일찍 오면 안돼!]
발랄한 어조로 쓰여 있는 말들이었지만, 아카아시는 이어지는 문장을 보며 더 이상 울음을 참을 수는 없었다. 느낌표 하나 없이, 진지한 어조로 쓰여진 것 같은 문단에는 아카아시를 향한 걱정만이 한가득 적혀 있었으니까.
[아카아시, 꼭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야 해. 세상에 나쁘기만 한 일은 없으니까. 무슨 힘든 일이 있든, 너무 나쁘게만 생각 말아야 해. 내가 언제나 여기서 지켜줄 테니까, 꼭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하게, 오래 살아. 그리고 천천히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와 줘. 그리고 웃어줘. 웃는 아카아시는 예쁘니까. 그럼 나도 웃으면서 안아 줄게. 약속이야.]
약속이에요. 그때 가서 볼품없어 졌다고 안 안아 주시면 안돼요. 눈에 고인 눈물을 소매로 거칠게 닦아낸 아카아시가 마지막 문단을 눈에 담았다.
[사랑해. 케이지. 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 더 많이. 말로는, 이런 글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이. 조금 많이 이따가 다시 보자. 안녕.
당신의 보쿠토 코타로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카아시의 눈이, 펼쳐진 책의 페이지를 향했다. 펼쳐진 책에는 문장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어, 아카아시는 다시 눈물을 거칠게 닦아야 했다.
[또 뭐가 있지? 그 애는 정말 아름다워요. 그 애를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아요. 그 애가 나보다 더 똑똑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더 똑똑하다는 걸 이미 아니까. 그 애는 남을 헐뜯지 않으면서도 재미있어요. 난 그 애를 사랑해요. 그 애를 사랑할 수 있어서 난 정말 행운이에요. 반 호텐.
이 세상을 살면서 상처를 받을지 안 받을지를 선택할 수는 없지만, 누구로부터 상처를 받을지는 고를 수 있어요. 난 내 선택이 좋아요. 그 애도 자기 선택을 좋아하면 좋겠어요.]*
그 구절의 옆에 익숙한 보쿠토의 서체가 쓰여 있었다.
[아카아시, 너는 어때?]
저도 좋아요. 저도 좋아해요. 좋아해요, 보쿠토상…
아카아시가 이제야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울었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 존 그린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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